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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와 뉴욕 '이민 박물관'…확 다르다

내년 2월 뉴욕에 한인이민사 박물관이 건립된다. 한인회관내 기존 공간 활용과 기금 모금 방법 등 건립 과정이 LA에 추진되고 있는 '아파트+박물관' 형태의 한미박물관과 대조적이다. 뉴욕한인회(회장 김민선)가 건립하는 이민사 박물관은 이민 초기 1세들의 활약상을 담아 후세 교육의 현장을 만들겠다는 취지다. LA한미박물관과 건립 목표는 같지만 건립 과정에서 차별화된다. 우선 공간 활용도다. 뉴욕 이민사 박물관은 맨해튼에 있는 한인회관 건물 6층에 조성된다. 기존 행사장으로 쓰던 공간을 재활용했다. 비록 크기는 6000제곱피트 규모로 다소 좁지만 이민관 전쟁관 독립관 통일관 직지심체요절 홍보관 등이 알차게 배치된다. 반면 LA한미박물관은 7배에 가까운 4만스퀘어피트의 대형 부지를 LA시로부터 사실상 무상 임대 받았지만 개발 계획을 공식 발표한 지 1년 5개월이 지나도록 아직까지 그 활용도나 전시관 구성 등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다만 향후 운영예산을 마련하기 위해 기존 박물관 부지의 40%를 아파트로 짓겠다고 밝혀 '아파트형 갤러리'가 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낳았다. 또 기금 건립 방법도 다르다. 뉴욕 이민사 박물관 기금은 150만 달러로 한인 사회와 기업 한국 정부가 함께 동참한다. 1차로 내년 1월13일 맨해튼 플라자에서 개최되는 '미주한인의 날 기념식'에서 50만 달러를 모금하고 매칭 펀드 형식으로 한국 정부에 비슷한 규모의 기금을 요청할 계획이다. LA한미박물관 건립 예산은 뉴욕 이민사 박물관의 20배인 3000만 달러다. 박물관측은 현재까지 모금된 기금 액수나 향후 계획을 공식 발표하지 않고 있다. 또 뉴욕 이민사 박물관은 전시할 유물들을 한인사회로부터 기증받고 있다. 한인 참여 유도 역시 LA한미박물관측은 미흡하다. 건립 추진 과정이 다른 이유는 추진 주체가 달라서다. 뉴욕 이민사 박물관은 한인회가 주도하는 반면 LA한미박물관은 소수의 이사진이 의사를 결정하고 있다. 정구현 기자

2016-12-14

대한인국민회 유물 드디어 한국 간다

대한인국민회 유물 2만여 점이 빠르면 올해 말 한국 독립기념관으로 옮겨질 예정이다. 대한인국민회 기념재단(이사장 권영신)은 USC동아시아도서관이 유물 스캔 및 디지털화 작업에 필요한 목록 작성을 최근 마쳤다고 밝혔다. 권영신 이사장은 "USC 측의 1차 목록 작성이 부실해 2차 목록 작성을 요청했다. 이후 3개월 동안 시대별, 주제별로 목록을 세분화해 스캔 과정에서 유물 분실 위험 가능성을 최소화했다"고 말했다. 대한인국민회 기념재단에 따르면 USC 연구원은 두 차례에 걸쳐 유물 스캔 및 디지털화 작업 목록을 완료했다. 향후 스캔 및 디지털화 작업 순서 일정표와 목록도 재단에 전달했다. 목록화 작업에는 USC 연구원, 서울대 규장각 교수 등이 참여했다. 권 이사장은 "유물 2만여 점을 한국에 보내기 전 정보공개 차원에서 USC가 스캔 및 디지털화 작업을 하는 것이다. USC 측의 권한을 한정하고 유물은 약 100일 정도만 작업할 수 있다는 점을 통보했다"고 전했다. 대한인국민회 기념재단과 USC동아시아도서관이 최종 계약을 체결하면 ▶유물의 먼지와 벌레알 등 불순물 제거 ▶컨테이너에 담아 USC로 운송 ▶유물의 스캔 및 디지털 작업이다. 대한인국민회 기념재단은 USC가 유물 디지털화 작업을 100일 안에 끝내기를 희망하고 있다. 하지만 USC 측은 "보존 상태가 좋은 사료는 바로 스캔 작업이 가능하지만, 산화가 심한 사료는 USC 도서관 전문 부서에 의뢰해야 한다"며 시간이 더 걸릴 가능성도 내비쳤다. 한편 한국 국가보훈처는 실무단 2명은 9일 LA에 도착해 대한인국민회 유물 위탁 준비작업에 나선다. 이들은 USC의 유물 디지털작업화가 끝나는 대로 한국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유물을 한국으로 운송할 예정이다. 지난 1월 국민회 측과 한미보존위원회는 유물 2만여 점을 ▶USC에서 스캔 디지털 작업한 뒤 ▶한국 독립기념관에 보내 위탁관리하고 ▶남가주 지역 수장고 갖춘 박물관 건립 때 환수한다는 3대 원칙을 세웠다. 김형재 기자 [email protected]

2016-09-06

'역사' 빠진 한미박물관 만찬행사

미주한인 이민사를 담겠다던 한미박물관에 '역사'가 빠졌다. 21일 밤 베벌리힐스의 베벌리 윌셔호텔에서 열린 한미박물관 기금모금 만찬행사에 미주 한인 역사를 대표하는 단체들이 초청받지 못했다. 250여 명의 초청자 명단에서 ▶대한인국민회 기념재단 ▶흥사단 ▶광복회 ▶3ㆍ1 여성동지회 등이 빠졌다. 특히 대한인국민회는 1909년 도산 안창호를 중심으로 조직된 미주 항일독립운동의 중추기관이자 초기 이민자들의 권익과 옹호를 대변했던 미주 이민사의 축이다. 권영신 이사장은 “후대에 역사를 전하겠다는 박물관이 도산의 유지와 이민사를 계승해온 사람들을 외면한 것”이라며 “누구를 위한 박물관인지 묻고 싶다”고 불쾌한 감정을 감추지 못했다. 한미박물관측의 '역사 단체'에 대한 홀대는 박물관의 역할이나 역사 의식의 실종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이날 만찬은 지난해 같은 날 건립안을 발표한 지 꼭 1년 만에 처음 열리는 공개행사다. 전체 한인 커뮤니티의 잔치여야 했지만 사전에 보도자료 한 장 내보내지 않았다. 지난 1년 간을 돌아봐도 박물관측의 커뮤니티 참여 유도 노력은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건립 진척 사안이나 의견 청취를 위한 설명회 역시 한 차례도 없었기 때문이다. 한미박물관의 만찬은 4개월 전 열린 일미박물관(JANM)의 같은 행사와 여러모로 대조적이다. 박물관측은 행사를 위해 개최 5개월 전부터 웹사이트,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외부에 공지했다. 만찬에는 110여 개 기업과 단체가 후원했다. 일본계는 물론이고 미국 방위산업체 노스롭 그루먼, 아메리칸 항공, 유니언뱅크, LA카운티교통국, 잭인더박스 등 주류 대표 기업과 정부 기관까지 지갑을 열었다. 행사장인 보나벤처 호텔 연회장에는 초청인사와 평범한 '민초' 등 1200명이 만석을 이뤘다. 저녁 식사비는 도요타가 후원했다. 이날 일미박물관의 노먼 미네타(86) 이사장의 개회 연설은 이랬다. “혼란스러운 세상이지만 이세이(이민 1세)와 니세이(2세), 우리 가족들의 이야기는 지금도 생생히 살아있습니다. 우리 정체성을 기록한 박물관의 존재 가치가 왜 중요한지 잊지 말아야 합니다.” 정구현 기자 [email protected]

2016-07-21

한미박물관 '첫걸음'…1년 만에 공개 행사

미주 한인사회 최초의 한미박물관이 오늘(21일) 기금모금 만찬 행사를 개최한다. 건립안을 공개한 지 1년 만에 열리는 첫 공개 행사다. 한미박물관측은 이날 오후 6시 베벌리힐스의 베벌리 윌셔 호텔에서 만찬 행사를 연다고 밝혔다. 허브 웨슨 LA시의장, 주필리핀 미국대사로 내정된 성 김 대사 등 주류 및 한인 사회 인사 250여 명이 초청됐다. 한미박물관의 케이 송 이사는 "지난 1년간 공사 허가를 시정부로부터 받는 작업을 해왔고, 거의 마무리됐다"라며 "만찬 행사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후원 캠페인을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미박물관의 공동이사장을 맡고 있는 홍명기 밝은미래재단 이사장에 따르면 전체 건립 예산은 3000만 달러다. 현재까지 약정된 기부금은 20% 정도인 600만 달러 정도다. 이 중에는 LA시정부가 약속한 건립기금 200만 달러도 포함됐다. 박물관측은 "만찬 행사에서 웨슨 시의장이 이 기금을 전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나머지 기부금 400만 달러는 거액 기부자 10여 명이 희사한 것이다. 한미박물관은 6가와 버몬트 애비뉴 남서쪽(601~617 S. Vermont Ave.)에 있는 현재 시소유의 공영주차장 부지에 세워진다. 2013년 시정부가 부지를 50년간 연 1달러에 사실상 무상으로 장기 임대하기로 결정하면서 건립이 본격 추진됐다. 한인사회 오랜 숙원이 해결되면서 기대가 높아졌지만 지난해 박물관측은 한인사회에 알리지 않고 부지의 용도변경을 신청해 비난을 샀다. 당초 2층 단독 건물로 세워질 예정이던 박물관을 '아파트+박물관' 형태로 바꾸면서다. 아파트 렌트비로 박물관 운영예산을 마련하기 위한 자구책이었지만 단 한차례 공청회도 없이 소수 이사들의 결정만으로 강행돼 여론의 지적을 받았다. 정구현 기자 [email protected]

2016-07-21

'주민 공청회·참여단체' 한미박물관에만 없다

한미박물관의 착공 예정이 3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2개 이웃 소수계 커뮤니티들도 나란히 랜드마크 건립을 추진중이다. LA한인타운 북쪽에 접한 글렌데일의 아르메니안 커뮤니티는 우리처럼 박물관 건축안을, 동쪽 이웃인 리틀도쿄는 종합체육관인 '부도칸(무도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3개 프로젝트들은 장소만 다를 뿐 외양은 여러모로 닮았다. 그러나 그 속을 들여다보면 차이점 역시 확연하게 드러난다. 현재까지 공개된 랜드마크 추진과정을 나란히 비교 정리했다. <표 참조> ▶아픈 역사의 결실=3개 랜드마크는 각 커뮤니티에 단순한 건물 이상이다. 민족이 겪은 아픈 역사가 랜드마크의 필요를 낳았기 때문이다. 한미박물관의 건립이 본격 태동한 해는 4.29 폭동(1992년) 이듬해였다. 타인종들이 우리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도울 '문화적 교두보'가 절실했다. 일본계에게 부도칸은 '40여년'의 숙원사업이었다. 2차 세계대전 후 강제 수용된 재미 일본인들이 갇힌 공간 속에서 즐길 수 있는 스포츠는 농구밖에 없었다. 뿐만 아니라 유도, 가라데, 검도 등 일본 고유 무술을 전국으로 재확산하려면 체육관 마련이 시급했다. 아르메니안의 역사적 아픔도 크다. 지난해 아르메니아 대학살 100주년을 맞았다. 200만 민족이 희생된 잊을 수 없는 역사다. 그 기념사업의 일환이 박물관 건립이다. ▶구체화 시기.혜택 같다=3개 랜드마크의 또 다른 공통점은 부지다. 모두 시정부와 연 1달러에 장기 임대 계약을 체결했다. 사실상 무상 임대 혜택이다. 일본계가 2011년, 우리가 이듬해 부지를 받았고, 2년전 글렌데일시정부도 아르메니안계에 부지 임대안을 통과시켰다. 건물 면적도 거의 비슷하다. ▶한미박물관의 다른 길=역사적 아픔과 같은 혜택, 같은 크기로 출발했지만 현재 프로젝트의 추진상황은 서로 다르다. 우선 한미박물관만 단독 건물이 아니다. 한미박물관은 박물관 외관 남.서쪽 2개면에 7층 높이 아파트를 붙여짓는다. 한미박물관측은 "완공후 박물관 운영 예산을 마련하기 위한 자구책"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같은 박물관을 짓는 아르메니안 커뮤니티는 다르다. 박물관측이 홈페이지에서 밝힌 건축 지향점은 '아르메니안 역사와 민족을 알릴 커뮤니티 문화 캠퍼스'다. 부도칸 역시 현재 리틀도쿄내 치솟는 땅값을 감안하면 복합건물로 짓는 것이 경제적 측면에서는 이득이지만, 당초 건립 취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홈페이지에 적힌 모토는 '모두를 위한 홈경기장'이다. ▶한미박물관에만 없다=이웃커뮤니티 랜드마크들이 지나온 족적은 비슷하다. '커뮤니티 단체 대거 참여 공론화→지역사회 공청회로 의견수렴→원안 변경→최종 계획 수립'으로 공식화된다. 부도칸 프로젝트는 거의 30년 넘도록 중단됐다가 2011년 부지 증여를 받으면서 다시 부활했다. 그 이후 리틀도쿄서비스센터, 리틀도쿄커뮤니티의회 등 대표 단체들은 따로 또 같이 매달 1~2회 공청회를 열어오고 있다. 당초 부도칸 디자인 원안은 지붕을 일본풍 기와로 올리려 했지만, 다른 인종들을 아우르자는 의견에 따라 공원화하기로 했다. 아르메니안박물관 역시 계획을 변경했다. 당초 부지는 글렌데일칼리지 건너편 주차장이었지만, 지역 주민과 재학생들의 교통 체증 유발 우려로 다운타운으로 옮겼다. 1, 2월 2개월 동안에만 8차례 공청회를 열어 찬반의견을 경청한 결과였다. 한미 박물관 역시 원안을 수정했다. 당초 단독 건물로 올려리다 '아파트+박물관'안으로 바꿨다. 하지만 변경 과정에서 참여단체도, 공청회 절차도 모두 생략됐다. 한미박물관의 착공 예정 시기는 가장 빠르지만, 아직까지 주민들이 원하는 바를 듣지 못했다. 정구현 기자 [email protected]

2016-04-26

"국민회 유물 보존작업 5~10년 걸린다"

유물은 2만여장 분량 고문서 100년된 종이 한장씩 약품처리 전세계에서 인터넷 열람 가능 "공개되지 않은 90% 자료를 지키고 가꾸는 곳이 박물관 한미박물관은 노력하고 있나" 대한인국민회 유물의 한국행을 놓고 빚어진 법정 분쟁이 1년여 만에 종식됐다. 소송을 벌여온 대한인국민회 기념재단과 한미역사보존위원회가 지난 15일 유물의 한국행에 합의하면서다. 이에 따라 2만여 장에 달하는 고문서 유물들이 보존처리를 위해 한국으로 보내지게 됐다. 유물 관리를 맡은 한국 독립기념관의 홍선표 박사와 전화로 인터뷰했다. 그는 2011년과 2012년 2차례 LA에 와서 국민회 유물의 실사 작업을 감독했다. 홍 박사는 "유물의 한국행이 늦어졌지만 더이상 유물의 훼손을 막을 수 있게 돼 기쁘다"고 소감을 전했다. 그러면서 "유물들은 1900년대 초반 미전역의 독립운동 열기를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어 역사적 가치가 높다"며 "한장 한장 세심하게 보존해서 잊혀진 미주 한인들의 역사를 되살리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분쟁을 벌이던 기념재단과 보존위가 합의했다. "늦었지만 축하할 일이다. 그러나 민족 자산을 놓고 우리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미국 법정까지 간 것은 우리 모두 반성해야 한다." -유물의 한국행 의미는. "디지털 작업과 보존 처리를 통해 미주 한인들의 역사를 새로 정립할 수 있게 됐다. 잊혀졌던 역사를 전세계에 알릴 수 있게 됐다." -유물은 어떤 것들인가. "고문서다. 페이지로는 2만여 장이고 건수로는 7000~1만 점 정도로 추정된다. 역사적 가치가 높은 이유는 모두 직접 현지에서 생산된 문건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1908년 스티븐슨을 저격한 장인환·전명훈 열사의 재판 비용을 한인들이 모금한 기록은 매우 귀한 사료다." -유물의 훼손 정도는. "전체 문서 중에서 30%는 보존 처리가 시급하다. 100년이 넘은 문서라서 이미 산성화가 많이 진행됐다. 잘못 건드리면 바스러질 정도다." -USC에서 1차로 스캔 작업을 한 뒤 한국으로 보낸다. "우려되는 부분이다. 스캔 과정에서 문서들이 바스러지기 쉽다. 분류 작업시에도 고유명사나 단체명 등 우리말을 영어로 표기할 경우 오류가 생길 수 있다. 역사가 잘못 기록될 수 있다는 뜻이다." -보존처리는 어떻게 하나. "화학적 작업을 하게 된다. 건조해지고 말라버린 종이들을 약품처리해 질기게 만든다. 또 부서진 조각들을 하나하나 붙이는 작업도 병행된다." -얼마나 걸리나. "한장 한장 약품에 담그고 말려서 붙여야 하는 지난한 작업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철저히 보존처리할 생각이다. 국가기록원의 협조를 얻어야 한다. 빨라야 5년, 길면 10년까지 필요하다." -유물은 어떻게 활용되나. "스캔한 이미지는 데이터베이스에 올려 인터넷으로 누구든, 어디서든 열람할 수 있도록 한다. 또, 특별 전시를 통해 일반인들에게 공개한다." -국민회측은 남가주에 수장고가 생기면 다시 유물을 돌려받겠다고 한다. "수장고를 짓기위해서는 막대한 비용이 든다. 설치 비용도 문제지만 그 이후 연구 및 관리 전문가도 필요하다. 한번 지어지면 영구적으로 가야하는데 민간단체가 감당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많다." -현재로선 수장고를 지을 수 있는 곳은 한미박물관밖에 없다. 가능하다고 보나. "건립 계획을 봤다. 박물관이라는 것은 역사와 문화를 지키는 기관이다. 현재 한미박물관은 그 역사적 임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단순히 지으면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면 오산이다. 박물관이 일반인들에게 보이는 부분은 10%에 불과하다. 나머지 보이지 않는 90%를 지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 노력을 하고 있는가." 정구현 기자

2016-01-21

"유물 돌려받으려면 수장고 반드시 필요"

대한인국민회 유물의 한국 위탁 결정본지 2016년 1월21일 A-1.2면>으로 한미박물관의 부실한 건립 계획에 대한 개선 필요성이 다시 제기됐다. 대한인국민회 기념재단(기념재단)과 한미역사보존위원회(보존위)측이 21일 유물의 한국행을 공식 발표한 합동 기자회견에서다. 지난 1년여 법정 분쟁을 벌여왔던 양측은 유물을 ▶USC에서 스캔한 뒤 ▶한국 독립기념관에 보내 보존처리 및 보관하고 ▶남가주에 수장고 등 보존시설이 준비되면 반환받는다는 데 합의했다고 이날 밝혔다. 현재 유물을 보관중인 나성한인연합장로교회의 박일영 목사는 "3개 합의안 중 세번째가 궁극적인 목표이자 가장 어려운 과제"라고 지적했다. 수장고 시설을 마련하지 못하면 사실상 유물은 LA로 돌아올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로선 6가와 버몬트 부지에 건립이 추진되고 있는 한미박물관이 유물을 반환받을 수 있는 유일한 현실적 대안이다. 그러나 양측 대표들은 "현재 건립안대로라면 유물을 한미박물관에 넘길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기념재단의 권영신 이사장은 "한미박물관의 건립계획안은 갤러리 수준에 가깝다"면서 "만약 한미박물관이 수장고를 제대로 짓지 않는다면 범교포적인 기금운동을 벌여 따로 박물관을 짓는 방법도 있다"고까지 발언 수위를 높였다. 박 목사는 "그런 사태를 막기 위해서는 한미박물관이 제대로 지어져야 한다"면서 "우리 모두가 그 필요성에 대한 여론을 형성하고 압박해서 잘 지을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구현 기자

2016-01-21

유물 어떤 것들이 있나…"80%가 역사 가치 A급"

유물들은 지난 2003년 국민회관 리모델링 공사 중 다락방에서 발견됐다. 라면박스 2배 크기의 29개 박스에 담긴 2만여 페이지의 방대한 분량의 문서 사료들이다. 기록에는 1908년부터 1936년까지 국민회 활동과 미주한인들의 독립운동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중에는 보물급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지난 2011년 12월과 2012년 4월 두 차례에 걸쳐 독립기념관 전문가들이 실사한 결과 80% 정도가 역사적 가치로 A등급을 받았다. 가장 오래되고 가치가 높은 유물로는 1908년 3월 23일 미주한인들이 장인환.전명운 의사의 친일 미국인 스티븐슨 저격사건 이후 돈을 모아 변호사 비용을 마련했다는 내용을 담은 원본 문서다. 또 ▶1919년 3.1운동을 전후한 대한인국민회 공문서와 상해임시정부 재정지원 내용을 담은 문서 ▶1930~40년대 국민회 각 지방회 공문을 비롯한 재미한족위원회 활동내역, 해방 직후 한국 정부수립 전까지 한국에서 활동한 미주 대표단 문서 ▶미군정 활동내용을 기술한 문서 등도 대표 유물로 꼽는다. 뿐만 아니라 1920년대 미주한인 인구 현황을 수록한 '재미동포 인구등록'과 한인 이민초기 한글교과서, 개인 서신 및 사진, 이민 초창기 태극기, 공립신문, 신한민보 원본 및 축쇄판, 독립운동자금 입금대장 등도 있다. 정구현 기자

2016-01-20

한미박물관 수장고 없으면 반환 어렵다

"보존 시급" vs "LA가 제자리" 다툼 1년 간 법정 싸움에 유물만 더 훼손 "한미박물관은 역사적 책임 느껴야" 대한인국민회 유물의 한국행이 결정되면서 보존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2003년 발견된 2만여 페이지, 1만 여점에 달하는 유물들은 100여년이 지난 고문서여서 훼손이 심각했지만 관련 단체들의 이해관계와 명분 다툼에 휘말려 박스안에서 썩고만 있었다. 대한인국민회 기념재단과 한미역사보존위원회가 한국행에 합의하면서 유물들은 13년 만에 비로소 그 가치에 걸맞는 대우를 받게됐다. ▶분쟁 배경·쟁점=분쟁 배경은 유물 보존이라는 '현실적인 대안'과 한인사회 정체성을 앞세운 '유물의 제자리'간의 다툼이었다. 2003년 발견 당시부터 유물들은 훼손이 심각해 하루 빨리 보존처리가 필요했다. 하지만 그 후 10여 년간 관련 단체들은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 이에 기념재단측은 2013년 8월 이사회에서 한국의 독립기념관으로의 이관을 전격 결정했다. 유물을 보존할 마땅한 수장고가 없는 상황에서 더이상의 훼손을 막기 위해 한국의 전문기관에 맡기자는 현실적인 대안이었다. 그러나 2014년 9월 LA한인회관에서 열린 공청회를 시작으로 반대 여론이 본격화됐다. 당시 참석한 대다수의 한인들은 "한인사회의 소중한 자산들을 우리가 보관해 후대에 물려줘야 한다"고 반발했다. 미주한인의 정체성과 뿌리교육의 중요성은 큰 호응을 얻었다. 그러나 한국행을 막을 수 있는 또 다른 대안은 제시하지 못했다. USC 등 미국 대학에서 보존하자는 의견을 내놓았지만, 한인사회의 유물을 미국의 사립대학에 맡기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한국행 외에는 뚜렷한 대안이 없었음에도 이에 반대하는 보존위가 조직돼 법정 분쟁까지 불사하며 맞섰다. 이후 1년여간 양측은 법정에서 팽팽한 다툼을 벌여왔다. ▶합의 의의=대한인국민회 기념재단측은 이번 합의에 대해 "양측 모두 윈윈했다"고 평가했다. 특히 기념재단측은 한인 대표 단체로서 연초부터 화합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데 큰 의의를 뒀다. 그러나 '상처뿐인 영광'이라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우선 미주 한인 독립운동가 선열들의 발자취가 담긴 보물을 놓고 후세들이 법정다툼을 벌였다는 비난은 면치 못하게된 상황이다. 양측은 이번 법정 투쟁에서 막대한 시간과 소송 비용을 부담해야 했다. 유물 보존하게될 한국 독립기념관의 홍선표 박사는 "합의는 축하할 일"이라면서도 "우리 유물 보존문제를 한인 사회내에서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미국 법정까지 간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기념재단과 보존위 양측은 법정 싸움은 벌였지만 '유물의 시급한 보존 처리'에는 이견이 없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분쟁 때문에 유물들은 1년 넘도록 방치돼 더 훼손되고 말았다. ▶전망 및 남은 과제=유물의 보존 처리가 시급하다. 작업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USC는 유물 훼손을 최소화하면서 스캔 작업을 최대한 빨리 끝내야 한다. 그래야 한국 독립기념관에서 본격적인 보존작업에 착수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한국에 간 유물을 반환받을 수 있느냐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쉽지 않다. 양측의 3개 합의 문항중 마지막 문항은 반환 조건을 '수장고를 갖춘 박물관이 생기면'이라고 전제하고 있다. 건립 추진중인 한미박물관을 염두에 둔 조항이다. 그러나 한미박물관의 건립계획상 수장고 시설은 부실하다. 권영신 이사장은 "유물을 반환받기 위해선 한미박물관의 역할이 막중하다"면서도 "하지만 박물관이 그 역사적 책임을 깨닫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정구현 기자

2016-01-20

국민회 유물 1만 점 한국 간다

대한인국민회 유물 1만여 점이 결국 한국의 전문기관에 위탁관리된다. 대한인국민회 기념재단(이하 기념재단)은 지난 15일 열린 분쟁 중재(arbitration)를 통해 한미역사보존위원회(이하 보존위)측과 조건부로 유물의 한국 위탁관리에 합의했다고 20일 밝혔다. 이날 양측은 유물의 한국 이관과 관련 ▶USC에서 유물 스캔 디지털화 및 보존처리 후 ▶한국 독립기념관에 위탁하고 ▶남가주 지역에 수장고를 갖춘 관련 박물관이 마련되면 되돌려받는다는 3대 원칙에 합의했다. 이에 따라 유물의 한국행을 놓고 빚어진 찬반 논란과 법정 분쟁 갈등은 1년여 만에 봉합 됐다. 보존위 측이 유물의 한국 이관에 반대해 가처분신청을 접수본지 2014년 11월21일자 A-4면>한 지 1년2개월 만이다. 유물을 둘러싼 분쟁은 보존 및 보관 방식에 대한 양측의 의견차에서 비롯됐다. 기념재단측은 지난 2013년 8월 이사회를 열어 한국 이관을 결정했다. 한인사회에 유물을 보관할 수장고가 없는 상황에서 더이상의 훼손을 막기 위한 현실적 선택이었다. 그러나 흥사단 등이 보존위를 조직해 "LA의 유물을 한국으로 보낼 순 없다"고 반발하면서 갈등이 빚어졌다. 기념재단의 권영신 이사장은 "의견차는 있었지만 결국 양쪽 모두 유물의 보존이 최우선이라는 데는 공감해왔다"며 "대의를 놓고 서로 조금씩 양보해 명분을 찾아 윈윈(win-win)하는 결과를 얻어 기쁘다"고 말했다. 기념재단 측은 유물들을 늦어도 올해 하반기에 한국으로 보낸다는 방침이다. 권 이사장은 "USC에 자료 스캔 작업기간으로 3~6개월 정도만 허락할 예정"이라며 "더이상의 훼손을 막기위해 작업이 끝나는대로 유물을 특수포장해 한국에 보낼 것"이라고 밝혔다. USC와 독립기념관 측은 각 기관이 맡은 작업을 무상으로 제공한다. 기념재단과 보존위 양측은 오늘(21일) 오후 2시 대한인국민회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세부 사항을 발표할 예정이다. 정구현 기자

2016-01-20

새 이민 역사 쾌거…주류 언론선 뭇매

한미박물관에 24일은 희비가 교차하는 날이었다. 시로부터 부지 임대 및 건축 계획을 최종 승인받았지만, 주류 언론의 뭇매를 맞았다. LA데일리뉴스는 이날 '시의회가 논란 많은 부지 임대안을 승인한다'는 제목 아래 한미박물관 승인 건이 특혜라는 취지로 보도했다. 신문은 시 소유 부지를 한미박물관측에 연간 1달러에 사실상 무상 임대하기로 한 결정을 문제삼았다. 시의회는 박물관 건축안 승인 배경에 대해 "단순한 박물관이 아니라 아파트를 겸하고 있어 아파트 대란을 해소하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해왔다. 그러나 신문은 "현재 부지 시세는 500만 달러고, 일반기업에 임대하면 연간 50만 달러의 추가 세수를 거둘 수 있다"고 경제적 효과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면서 시민감시단체의 말을 인용해 "시는 땅을 주지 말았어야 했다"고까지 비난 강도를 높였다. 표면적으로 기사는 경제성을 들어 한미박물관에 대한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있지만, 행간을 살펴보면 표적은 따로 있다. 신문은 "해당 부지는 허브 웨슨 시의원의 지역구"라면서 박물관측 인사들과 웨슨 시의원간의 '밀접한 관계'를 지목하고 있다. 24일자 데일리뉴스 기사에 대해 박물관측은 "박물관이 세워진 곳마다 지역경제가 되살아나는 효과가 있었다는 것을 간과한 기사"라며 "시와 커뮤니티가 공동 개발로 윈-윈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박물관측 설명대로 데일리뉴스의 기사는 편파적인 주장일 수 있다. 하지만 주류 언론이 제동을 걸고 나서게 된 원인은 박물관 측에도 있다. 박물관측은 건축안에 대해 한인사회 내부에서조차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했다. 일반 한인들은 고사하고 전임 관장들에게 조차 계획안에 대한 의견을 묻지 않았다. 한미박물관이 임대 건물을 전전하던 1997년 3대 관장 역임한 새라 리씨는 본지와 인터뷰에서 "수장고조차 제대로 없는 박물관은 도대체 누구 아이디어인지 궁금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역사회를 위한다는 명분도 약하다. 아파트 103개 유닛중 저소득층 임대분은 최대 11개에 불과하다. 미주 한인사회의 오랜 숙원인 한미박물관 건축에 이사회측의 혜안이 어느때보다 필요하다. 정구현 기자

2015-11-24

한미박물관 '아파트+박물관' 형태 건축안 승인

미주 한인사회 최초의 한미박물관(KANM) 건축 계획안이 '아파트+박물관(조감도)' 형태로 LA시의회에서 최종 통과됐다. 그러나 주류 언론에서 '특혜 의혹'을 제기하며 제동을 걸고 나서 이를 해결할 복안 마련이 시급하다. 24일 LA시의회는 6가와 버몬트 남서쪽 3만 스퀘어피트 규모의 교통국 소유 부지를 한미박물관 측에 연간 1달러에 임대하는 안과 박물관 건물 디자인 등 2건을 최종 승인했다. 이날 승인된 건축안은 그간 논란이 된 '아파트+박물관' 형태다. 7층 건물의 1층은 박물관 전용공간이지만 2층부터는 박물관 남서쪽면에 아파트를 붙여짓는다. 아파트 렌트비로 박물관 운영예산을 마련하자는 자구책이다. 그러나 이 때문에 박물관 활용면적은 초안이었던 박물관 단독 건물에 비해 40%나 줄었다. 또 승인안은 103개 아파트 유닛 중 10%인 11개를 저소득층에 임대하도록 명시했다. 한미박물관은 400만 달러 추가예산이 필요하다면서 시의회의 저소득층 유닛 전환에 난색을 표명해왔다. 한미박물관 건축 계획안은 그간 수차례 변경됐다. 당초 ▶박물관 단독건물에서 시작했다가 ▶아파트 위 박물관→▶아파트+박물관→▶(저소득층 유닛)아파트+박물관으로 바꾸었다. 그 과정에서 단 한차례의 공청회도 열지 않는 등 한인사회 내 여론반영 과정이 생략됐다. 정구현 기자

2015-11-24

한미박물관에 수장고 만든다

어떻게 기존 스토리지 자리 활용 내부 설계 변경해 추가 문제는 수장고 지을 공간 태부족 관련 예산.전문가도 필요 한미박물관(KANM)이 건립계획안에서 부실한 점으로 지적된 수장고를 확충하기로 했다. 지난 21일 한미박물관측이 공개한 평면도상에 수장고가 없다는 지적을 받아들여 개선하기로 한 것이다. 수장고란 박물관에 전시되는 유물을 보관.보존하는 장소로 건물 설계 단계부터 전시장과 더불어 가장 세심하게 계획된다. 온도, 습도, 공기, 병충해 등으로부터 유물을 보호하기 위해 항온.항습 자동 조절 및 누전.누수.화재 방지 시스템이 설치된다. 한미박물관 이사 중 한 명인 제이미슨 프로퍼티스의 데이비드 이 대표는 "(내부 설계를 변경해) 수장고를 추가하기로 했다"고 28일 밝혔다. 수장고를 '추가'한다는 표현을 쓴 이유는 수장고로 활용 가능한 스토리지(Storage)를 확보해놓았기 때문이라는 것이 한미박물관측 입장이다. 그러나 평면도에 표시된 스토리지는 유물 보관용이라기 보다 창고에 가깝다. 스토리지는 1.2층과 옥상에 총 7개로 조각나 있다. 가장 큰 스토리지도 358스퀘어피트고, 모두 합해도 고작 900여 스퀘어피트 정도다. 1만6000여 스퀘어피트의 3개 전시관 면적의 5%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한미박물관 전체 규모로 볼 때 수장고가 최소 3000스퀘어피트는 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미박물관의 아이린 홍 프로그램 디렉터는 "박물관 내부 공간은 얼마든지 유연한 변경이 가능하다"면서 "이사진 또한 수장고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장고 확충 결정은 환영할 일이지만, 실제 추진이 쉽진 않을 전망이다. 우선 실제 확보할 수 있는 공간이 충분하지 않다. 당초 단독건물로 지으려다 '아파트+박물관' 형태로 계획안을 변경하면서 박물관 면적이 40% 줄었기 때문이다. 또, 수장고는 단순 저장공간이 아니라 유물 보관과 보존 기능을 위한 항온.항습 시스템을 설치해야 한다. 관련 예산을 따로 마련해야 한다는 뜻이다. 뿐만 아니라 '보존 처리사(conservator)'로 불리는 관리 전문가도 고용해야 한다. 한미박물관측은 8월 중순쯤 열릴 이사회에서 수장고 확충을 비롯해 아파트 일부 유닛의 저소득층 거주용 전환 등 그동안 제기된 현안들을 검토할 예정이다. 정구현 기자

2015-07-28

[스토리 In] '이야기'를 담지 못하는 박물관

"1944년 8월21일. 오늘밤이 수용소에서 마지막 밤이다. 내일 아침 난 육군에 입대하러 떠난다. 수용소에 온 지 2년 만이다. 처음 여기 온 날을 또렷이 기억한다. 우릴 강제로 실은 기차가 멈췄다. 차창 밖을 내다보니 포모나(LA인근 지역)에서 함께 살던 친구들이 우릴 반겼다. 수천 마일 떨어진 곳에서 친구들을 보니 반가웠지만 다시 집으로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슬퍼졌다.(중략) 내일 아침 일찍 떠난다. 엄마, 아빠, 형제들이 건강하게 지내길 바란다. 다들 알로하(안녕) -다시 글을 쓰게 될 때가 1년 뒤가 될지 그보다 더 빠를지, 10년 뒤가 될지 모르겠지만." 96페이지 분량 일기의 마지막장이다. 일기를 쓴 소년은 LA에서 나고 자란 '닛세이(일본계 2세)' 스탠리 하야미다. 1942년 16세 때 미국정부의 일본인 강제수용 정책에 따라 가족과 함께 와이오밍주의 수용소에 갇혔다. 2년 뒤 그는 육군에 입대해서야 수용소를 떠날 수 있었다. 하지만 가족들에게 다시 글을 보내지 못했다. 마지막 일기를 쓴 지 8개월 뒤인 1945년 4월23일 하야미는 이탈리아에서 전사했다. 꽃다운 19세였다. 하야미의 일기는 LA다운타운 일미박물관 상설전시관에 전시돼 있다. 22일 찾아간 일미박물관에서 만난 코지 사카이 프로그램 담당 부회장은 "10만여 점의 소장품 중 가장 아끼는 유물"이라고 소개했다. 일본계 미국인들은 이 일기를 일본판 '안네 프랑크의 일기'라고까지 부른다. 소년의 시각으로 수용소 내의 희망과 절망 등 당시 강제수용됐던 일본계 미국인 12만여 명의 트라우마가 고스란히 적혀있다. 일미박물관의 상설 전시관에는 하야미의 일기를 비롯해 지난 150여년간 일본계 이민자들이 남긴 '사연'들이 빼곡히 전시돼 있다. 최초의 일본계 미국인 야구단이 쓴 야구공, 최초의 일본계 미국인 사찰에서 쓰던 제기 등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그들만의 이야기들이다. 일본인 1만 명이 집단 거주했던 수용소 전체 축소모형과 수용소 막사도 1/3크기로 재현되어 있다. 첨단 기술로 만들어진 깔끔한 갤러리도 좋지만 투박하더라도 가공되지 않은 축적된 그들만의 이야기가 오래간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다. 일미박물관은 그 하나하나의 사연들을 마치 천을 짜듯 엮어 그들만의 역사를 재정립하고 있다. 개관 23년이 지났지만 그들의 이민사 정리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투어를 마치고 커뮤니티룸에서 점심 식사를 함께했다. 마침 이날은 우리로 치면 한인회 격인 '일본인회(Japan Society)' 자원봉사자들이 박물관 전 직원들을 대접하는 날이다. 여름 3개월간 매주 1번씩 '사시미 런치'라는 이름으로 커뮤니티와 직원들이 밥을 먹으면서 1:1로 교감한다. 특별 손님도 초대됐다. 2011년 3월11일 후쿠시마 원전 재해로 부모를 잃은 고아들이다. 당시 고아가 된 아이들은 2000명에 달한다. 2시간여 걸린 일미박물관 투어는 사람들이 남긴 사연과 이를 보존하고, 전달하려는 사람들의 노력을 깨닫는 과정이었다. 21일 한미박물관의 청사진이 공개됐다. 외형상 뚜렷한 한국 전통미는 찾기 힘들다. 설계 도면엔 수장고도 없다. 한 이사는 "골동품 같은 것들은 전시할 필요가 없다"며 수장고가 필요없다고 했다. 아파트를 옆에 붙여지어 '지속적인 수익'을 확보했다는 데만 의미를 찾고 있다. 한미박물관이 반드시 일미박물관처럼 돼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보다 오래된 이민 역사, 주류사회와의 교류, 경제적 위치, 정치적인 영향력 등을 감안하면 그들처럼 박물관을 만들기는 어렵다. 하지만, '역사를 전시하겠다'는 짧은 문장을 감히 말하려면 얼마나 많은 노력과 시간과 정성이 필요한지 정도는 최소한 알고 있어야 한다. 그런 지각조차 없이 박물관을 지을 바에야 차라리 '갤러리형 아파트'라고 방향성을 수정하는 것이 후손들에게 덜 미안하지 않을까.

2015-07-26

1000만달러는 모금하고…나머지 2000만달러 융자

한미박물관 건립기금 모금과 운영 계획에 대해 관심이 모이고 있다. 한미박물관측은 21일 '아파트+박물관' 형태로 짓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당초 단독 건물로 지으려 했다가 운영자금 마련을 위한 지속적 수익을 얻기 위해 아파트를 박물관 옆에 붙여 올린다는 계획이다. 홍명기 공동이사장에 따르면 전체 프로젝트 예산은 3000만 달러다. 이중 1000만 달러를 모금하고 나머지는 융자를 얻는 쪽으로 의견이 모였다. 현재까지 이사진이 기부한 금액은 150만 달러다. 이 금액은 홍 공동이사장과 제이미슨 프로퍼티스의 데이비드 이 대표 권정자씨가 각각 50만 달러씩 완납한 액수다. LA시에서도 최대 200만 달러를 약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면 최대 350만 달러를 확보할 수 있지만 여전히 650만 달러 정도가 필요하다. 홍 공동이사장은 "재력이 있는 몇몇 한인들이 기부를 약정해주셔서 이 분들을 이사로 영입할 예정"이라며 "자세한 기금 마련 계획은 추후 밝히겠다"고 말했다. KANM 홈페이지에 따르면 현 이사진은 홍 공동이사장을 포함해 8명이다. 운영 자금은 거의 대부분 아파트 렌트비에 의존할 것으로 보인다. 홍 공동이사장은 "설계 구상단계에서 충분한 운영자금을 확보하려면 아파트 유닛수가 최소 100개 이상 되어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다"면서 "1 2베드룸으로 평균 렌트비는 1500달러 수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21일 발표된 건축안을 보면 아파트 유닛은 103개다. 단순 계산대로라면 매달 최소 15만달러 연간 180만 달러 이상의 수익을 얻게 된다. 홍 공동이사장은 "아파트 관리비를 제외한 전액이 박물관 운영비로 쓰이게 된다"고 설명했다. 정구현 기자

2015-07-22

시정부 소유 부지에 일반 아파트 짓겠다고…일부 주류언론 "?"

21일 한미박물관 건축 계획안이 발표된 것과 관련, 일부 주류 언론이 일제히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다. LA 데일리뉴스는 22일 1면 하단에 기사를 게재하면서 통상적이지 않은 혜택에 시당국이 주목하고 있다는 제목을 뽑았다. 또 LA 비즈니스저널은 비영리단체의 시정부 재산 사용에 대한 논란 가능성을 제기하는 기사를 올렸다. 이들 신문의 비판 내용 골자는 연간 단 1달러에 렌트한 시정부 소유 대지에 2000만 달러를 들여 주상복합 아파트를 건축하면서 서민이나 노인 대상이 아닌 시장가격이 적용되는 일반 아파트를 짓는다는 점이다. 신문에 따르면 비영리단체가 시정부 소유 부동산을 대폭 할인된 가격으로 장기간 렌트하는 경우는 많다. 하지만 한미박물관처럼 아파트를 짓고 여기서 나오는 재정을 박물관 운영비로 쓰는 경우는 아주 예외적인 사례다. 더구나 LA시는 박물관이나 아파트에서 어떠한 세금도 걷지 않는다는 것이다. 신문들은 한미박물관 측이 매년 기금모금을 통해 박물관 운영비를 마련하는 게 쉽지 않다고 보고 대안을 모색하다 약 1개월 전 아파트 병용 건축안을 이 지역 관할 허브 웨슨 시의원에게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김병일 기자

2015-07-22

부러진 숟가락조차 스토리가 있다

일미박물관은 가깝고도 멀다. 한미박물관 건립계획이 공개된 다음날인 22일 LA다운타운 리틀도쿄에 있는 박물관을 찾아갔다. 개관 23주년을 맞는 그들에게서 박물관에 대한 경험을 듣기 위해서였다. 4500만달러를 들여 1999년 개관한 신관 '파빌리언'은 2층 건물로 8만5000스퀘어피트 면적에 3개의 전시관 8개의 커뮤니티룸 일본식 정원 등이 꾸며져있다. 프로그램 담당 부회장인 코지 사카이(38)씨가 정문에서 반갑게 맞았다. 2층의 상설 전시관으로 먼저 안내했다. '공감의 장: 커뮤니티의 중심'이라는 상설 전시관에는 2차 세계대전 전후의 일본인들의 애환이 담긴 1000여장의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사진의 표정은 전쟁 전후로 확연히 나뉜다. 행복했던 일본계 미국인들은 진주만 공습 이후 수용소로 강제 이주됐다. 무려 12만 명에 달하는 민간인들이 10여개 캠프로 옮겨갔다. "당시 일본계 미국인들은 2세 3세들이었습니다. 대부분 미국화되서 영어가 편한 분들이었죠. 단지 출신국가 국적이 일본이라는 이유로 한순간에 재산과 삶의 터전을 빼앗겨야 했죠. 그 '트라우마(정신적 충격)'는 아직도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욘세(일본인 4세)인 사카이 부회장의 부모도 강제수용소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의 팔뚝엔 알파벳과 숫자 조합의 문신이 있다. 'OH129E'. 그의 아버지 수용자번호다. 뿌리를 잊지 않겠다는 다짐이라고 했다. 사진 외에 유물들은 언뜻 특별해 보이지 않는다. 안경 기모노 책 고가구 등등이다. 그들이 전시한 것은 겉모습이 아니었다. "우리가 보유한 유물은 10만여점입니다. 모두 기증받은 것들인데 우리가 받을 때엔 원칙이 있습니다.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느냐죠." 부러진 녹슨 숟가락과 깨진 질그릇 조차 전시하고 있는 이유다. 그중에서도 17세 소년 스탠리 하야미의 일기는 일본인들의 '안네 프랑크의 일기'라고 할 수 있다. 고교생인 하야미는 일기에 1941~1944년 수용소 생활을 빼곡히 적었고 1945년 19세에 미군으로 전쟁에 참전해 전사할 때까지 일상을 기록했다. 특별전으로 소개돼 큰 호응을 얻었다. 특별전도 한창이었다. 하버드 대학 교수였던 이토 박사가 2차 대전 참전에서 몰래 찍은 사진 200장이 전시중이다. 또 하와이의 일본인들의 삶을 담은 전시전도 진행중이다. 일미박물관은 최근 수년간 '진화'하고 있다. 이민사에 뿌리를 두되 아시아 전체 커뮤니티를 아우르는 전시를 연달아 선보였다. 지난해 10월부터 지난 5월까지 개최한 '헬로키티쇼'가 대표 사례다. 한마디로 대박이었다. 8만 여명인 연평균 방문객이 올해 벌써 15만 명을 넘겼다. 일본계 미국인의 테두리에서 벗어나 '아시안'들을 껴안는 실험이 성공을 거둔 셈이다. 이동중에 곳곳에서 이름들이 발견됐다. 벽 창문틀 바닥 계단 어디서나 기부자들의 이름이 박혀있다. "운영 기금의 90%가 개인 후원자들입니다. 사람 이야기를 진솔하게 전하면 사람들이 보러오고 사람들이 기부하게 되죠." 일미박물관 직원 50명중 기부자와 후원자 담당팀은 6명으로 가장 많다. 투어를 마치고 한미박물관의 청사진을 보여주면서 조언을 구했다. "아파트로 운영 예산을 마련하겠다는 것은 좋은 아이디어입니다. 하지만 아파트만 강조된 듯 보입니다. 어디에서도 박물관 수장고는 보이지 않네요. 또 외양은 전통양식이 아니라 컨템포러리 박물관이라 특징을 찾기 어렵습니다. 가장 중요한 건 박물관의 철학이 뭐죠?" 한미박물관이 어떤 이야기를 소개했으면 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LA폭동부터 시작했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일미박물관이 세계 2차대전을 기준으로 그들의 삶을 나눴듯 한인 이민사를 1992년을 기준점으로 삼으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이다. 일미박물관측은 한미박물관을 기꺼이 돕겠다고 했다. 중미박물관 프로젝트도 선배인 그들이 지원했다. "불러만 달라"는 그에게 대답하지 못했다. 한인 커뮤니티가 도움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지 확신이 서질 않았다. 정구현 기자

2015-07-22

[취재수첩] 한미박물관 청사진…3가지가 빠졌다

21일 공개된 한미박물관(KANM) 건축안은 KANM의 전신격인 KAM 재단이 1991년 태동한 이래 24년 만에 나온 결실이다. 그만큼 오랜 기간 한인사회가 절실하게 바란 숙원 사업이다. 홍명기 KANM 공동이사장은 "지난 2013년 4월 LA시 소유 부지를 사실상 무상임대하게 된 뒤 지난 2년 3개월간 이사진이 거의 매달 1~2차례씩 만나 건축계획을 수십 차례 고치고 또 고친 결과물"이라고 설명했다. 당초 단독 건물로 짓겠다던 건축 계획이 변경된 배경은 결국 돈 때문이다. 3000만 달러로 추산되는 막대한 건축 예산과 향후 운영 자금을 마련할 수 있는 지속적인 수익원을 고민했고 그 현실적인 대안이 '아파트' 복합 건물이었다. 박물관 전용면적의 일부를 아파트에 내주는 대신 '경제적인 실리'를 선택한 것이다. 홍 공동이사장은 "('아파트+박물관' 최종 계획안이)나오기까지 이사진 등 관계자들의 고심이 컸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이사진들은 이날 허브 웨슨 시의장과 제임스 안 LA한인회장의 축사에 큰 박수로 남다른 감회를 표현했다. 그러나 이사진들은 만족했을지 모르지만 외부의 냉정한 시각으로 볼 때 계획안은 온전치 못했다. 3가지가 빠져있었다. ▶한국적 조형미가 없다= 우선 건축 디자인상의 한국미다. 경제적 측면에 주력한 나머지 조형미를 살리지 못했다. 이날 참석한 주류 언론 기자는 "조감도만으로 볼때 '한미박물관(Korean American National Museum)'이라는 간판을 떼면 여타 박물관과 구별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외관 디자인뿐만 아니라 한국을 상징하는 '색깔'조차 없었다. 흰색 일색이어서 언뜻 보기에는 오히려 호텔이나 병원 건물에 가깝다는 평가다. ▶수장고가 없다= 또 박물관으로서 기능을 잘 수행할 수 있을지 의문도 제기됐다. 이날 기자회견장에 초대된 USC 동아시아 도서관의 케네스 클레인 관장은 "도면상에는 박물관 수장고가 보이지 않는다"면서 "박물관이 수장고 없이 어떻게 유물을 보관하고 보존하려는지 부연 설명도 없었다"고 지적했다. ▶매스터플랜이 없다= 이외에도 향후 세부 계획도 공개되지 않았다. 한 주류 언론 기자는 "통상 커뮤니티 관련 대형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는 건축 기금 모금 계획과 개략적인 착공 완공일을 공개하지 않느냐"면서 기자에게 세부 계획을 알고 있는지 물었다. 이렇게 '3무' 기자회견이 된 배경은 급하게 서둘렀기 때문이다. 홍 이사장은 "웨슨 시의장 사무실에서 그간의 결과물이라도 공개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면서 "좀 더 꼼꼼하게 계획안을 구성하려 했지만 당초 일정보다 앞당겨 기자회견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날 한미박물관측은 "박물관의 주인은 한인"이라고 했다. 주인들이 알지 못하는 사이 박물관 계획이 변경됐고 주인들이 알아야 할 내용들이 공개되지 않았다면 진짜 주인은 누구인지 궁금하다. 정구현 기자

2015-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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